nokcha
한식의 원형은 고려시대 본문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동천왕조의 기록에도 국(羹)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그만큼 우리 민족의 국을 먹어 온지는 오래된 것이다.
고려시대의 국은 갱(羹), 탕(湯), 학(矐, 곰국)과 구이(炙), 회(膾), 포(脯), 볶음(炒) 등이다
고려 후기 몽골조리법인 만두나 설렁탕 등이 유입된다
고려 말 몽고의 풍습이 들어 오면서 고기를 삶아 국물을 내는 곰탕류의 음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려시대 곡물은 쌀과 잡곡이 중심이었으며, 수저는 타원형으로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통일신라 후기의 제도와 풍속을 계승한 고려시대는 불교를 더욱 발전시켜 국교로 삼았다.
살생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육류나 생선류 이용 대신 채식을 주로 하는 식생활이 발달되었다.
어업이나 양축이 금지되어 양곡증산의 필요성이 증가되었기 때문에 권농정책으로 식량의 증산과
비축에 더욱 힘을 쏟았다.
고려시대 전기
1 고려음식은 『고려도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 채소음식의 발달과 조미료 사용이다. 불교가 융성함에 따라 채소음식의 발달을 가져왔고
침채형 김치의 체계가 잡혀 한국김치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이 시기에 초를 만들어 이용하고 참깨의 재배로 참기름도 사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3 차와 과정류 가 발달했다. 부처님께 차를 바치는 헌다(獻茶)의 예와 풍류로 차를 즐기게 되어
다도의 예절도 생기게 되었다. 차를 마시는 풍습은 과정류의 발전을 가져왔다
4 고려 후기에 몽고의 지배를 받아 도살법과 여러 가지 육식조리법도 배우게 되었으며
찐빵의 일종인 상화(霜花.)가 들어오고 술을 증류하는 소주법도 널리 알려지면서 몽고군이 주둔하였던
개성, 안동, 제주등이 소주의 명산지가 되었다. 이 외에도 포도주, 사탕, 후추 등이 들어왔다
고려가 몽고에 전해 준 음식으로는 유밀과인 고려만두, 고려병이 있었다
고려 시대 후기
1 설농탕과 같은 국물이 헐렁한 국물요리가 시작된다. 고려 후기에는 몽고풍의 요리가 전해져
고기를 물에 넣고 삶아 그 우러난 국물과 고기를 함께 먹는 지금의 설렁탕, 곰탕이 생겨났다
고기 조리법도 이 때 몽고인에게서 전수되었는데, 대표적인 방법이 공탕(空湯)이다. 이때의
공탕이 지금의 곰탕의 원조인 것으로 추정된다
2 고려 후기에 육식이 본격화되면서 개장국, 쇠고기를 쓴 육개장, 설렁탕 등이 나타났다
『고려도경』에 최초로 국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데 설농탕 외에도 토란국, 아욱, 다시마국, 미역국 등의
이름이 보인다.
3 13세기 중반 이래 몽골의 침입으로 그들의 식육문화가 유입되고 고려 음식문화가 정립된다
4 공탕은 양고기 국물로 스프(탕)국이다(Buell 2003). 국물문화의 중심이다.
공탕선호는 ‘몽골비사’에도 자주 나온다 고기를 끓인 국물이다.
설렁탕과 순대, 만두는 몽고의 영향을 받은 음식 중의 하나다
5 원나라의 요리서 『거가필용(居家必用)』5)은 순대를 관장(灌腸)이라 부르며
『음선정요(飮膳正要)』에도 ‘호포육(胡炮肉)’이라고 하여 페르시아에서 전래됐다고 한다.
설렁탕의 기원
설렁탕은 민간어원설, 선농단설, 슈라설, 공탕(슐루)설 등이 있다.
『몽골비사』 229절에는 징기스칸이 아침에 설렁탕을 먹는다고 기록했다
『고려도경』.『고려사』에는 몽골의 육식풍습이 전국에 파급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고려 전기는 불교국가로 육류가 금지되다가, 중,후기부터 몽고의 문화유입으로 쇠고기 식용이 정착되었다
지역
강화는 몽골(蒙古)의 침입 때(1232) 40년 가까이 피난수도 [강도(江都)]로 자리하면서 대몽항쟁의 중심을
이루어 그 위상이 극에 달하였다. 고려 500년 동안의 인천지역사회는 명실공히 수도 개성에 다음가는
번화했던 지역이었다
옛날에는 이름난 향토음식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추탕>이었다.
요즘, 말하는 <추어탕>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원래, 인천과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추탕>이라고 했지
<추어탕>이라고 하지 않았다. <추어탕>이라고 하는 말은 6·25 이후 남쪽 지방에서 옮겨온 말로
남쪽 지방 사투리가 인천의 <추탕>을 밀어낸 말이다
인천도 여전히 설렁탕과 곰탕집은 많다. 다만 특성이 약할 뿐이다
인천의 향토 음식
인천해물전골, 꽃게탕, 전통장어요리, 자장면, 밴댕이회, 물텀벙이 탕과 찜, 추어탕, 시래기밥 칼싹둑이,
쫄면, 동어튀김
고려시대 이후 탕음식의 측면에서 보면 인천은 추어탕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유물로는
2011년 충남 태안에서 수중 발굴된 ‘마도선’에서는 800여년 전 고려인들이 썼던 생활도구와
음식이 나왔다. 마도 3호선에서 발굴된 물품은 당시 권력자들이 즐겨 먹은 음식이 무엇이었는
지를 보여준다
말린 홍합. 생전복.젓갈 등을 담은 항아리도 발견됐다
육포와 어포도 다수 있으며 이 중 ‘견포(犬脯)’는 개고기를 말린 포로 추정된다.
목간에서는 상어를 뜻하는 ‘사어(沙魚)’라는 말도 확인됐다 기타 밴댕이젓, 농게, 고등어젓갈, 메주,
쌀, 잡곡 등도 나왔다.
개성은 고려의 수도로서 음식이 사치스러웠고 격식이 까다로웠다. 음식의 양은 적었으나 가짓수는 많았고,
양념을 많이 했으며, 중간 정도의 간을했다. 개성시는 인삼 닭곰, 설렁탕, 추어탕, 약과 등을 지역특산물이다
개성은 고려의 수도로 몽골군 주둔 당시 개성소주와 개성순대가 전래된다
개성(경기도) 지방의 전통음식
밥 ; 오곡밥, 약밥, 장국밥, 잣죽
국 :설렁탕, 신선로, 토란국, 추어탕, 흑임자국, 닭고기국
김치 : 보쌈김치, 나박김치, 방아다리 배추김치, 룡인오이지, 석류김치, 고구마줄기김치
반찬 ; 갈비찜, 양지머리 편육, 갑회(소내포회), 오징어순대, 갈비불고기, 고기장덩이, 조기젓, 청어젓,
오징어젓, 녹두나물, 무채, 무청장아찌, 깻잎장아찌, 배추꼬랑이
떡과 당음료 :다식, 제호탕, 약과, 화전, 단자, 대추계피떡, 우메기, 개떡, 조랭이떡, 송편
국수 : 제물국수, 온면, 비빔국수, 녹두면, 깔싹두기 무장, 찹쌀고추장
조선 후기
조선조 후기로 오면 현재와 다름없는 여러 가지 조리법을 볼 수 있다. 곧 발효법(술, 자오, 초, 김치),
굽는 법(생선구이, 고기구이), 말리는 법(어포, 육포, 곶감, 건율), 찌는 법(고기찜, 생선찜, 떡류), 조리는 법
(생선조림, 근채류 조림), 볶는 법(고기볶음, 나물 볶음), 지지는 법(생선지짐, 나물지짐 등),
무치는 법(나물), 끓이는 법(밥, 탕류), 삶는 법(수육 등), 짜는 법(기름), 가루를 내는 법(깨소금, 고춧가루, 밀가루) 등이다.
고춧가루의 보급으로 채소를 가공 저장하는 김장법이 정착되었다
조선 시대 요리서의 기본인 『산림경제』(1715)의 요리편의 고기 요리는 60%가
몽고 초기의 가정백과사전인 『거가필용(居家必用)』에서 그대로 옮겨놓았다
조선시대 고기요리법은 80~90%가 굽는 요리다
이것은 과거 수천 년 전의 맥적(貊炙)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적(炙)이란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것으로
미리 조미하여(『儀禮』) 꼬챙이에 꽂아서 불 위에 굽는 것(『禮記』)이다.
한족(漢族)들은 미리 조미하지 않고 굽거나 삶아서 조미료에 무쳐먹는 데 반하여
예맥(濊貊)족은 미리 조미하여 구워서 먹었다. 이것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같다
서울의 기본음식도 탕국인 설렁탕, 곰탕, 국밥 등이다. 13세기 고려후기 몽고의 영향으로
탕국문화와 육식문화를 낳았고, 서울은 설렁탕이, 부산은 돼지국밥이,제주에선 몸국으로 계승 중이다
현대의 서울음식은 전통식, 고려와 조선음식의 혼합과 조선의 궁중, 반가음식과 백성음식을
중심으로 전수되고 있다
설렁탕은 결국 고려, 조선의 혼합식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려음식이면서
의례적 측면의 조선음식이 가미된 음식문화의 결정(結晶)이다.
즉 개성과 한양은 소의 뼈를 고은 국물 문화가 정착된다.
음식 문화 정체성은 조선보다 고려에 그 원형을 두고 있으며, 그 식문화의 유래는 유목민 음식
문화에 뿌리를 두면서도 쇠고기 중심의 반도적 특성을 가미한 ‘탕 문화’가 가미된
독자적 음식문화라고 판단된다
참고문헌
540년대. 『제민요술(齊民要術)』(Jeminyosul).
“고려시대 주류음식문화: 12-14세기 시문명과 관서명 청자 중심으로.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Hangguk
Siksaenghwal Munwha Hakhoeji) 24(2): 117-125.
교문사(kyomunsa)
국립민속박물관(Kukrip MinSok Bakmulgwan)
국립수산과학원(kukrip Susan Gwahakwon) 어식(魚食)문화
『한,몽 문화교류사
.
논문
13세기 고려의 탕湯 음식문화 변동 분석 : 개성, 안동, 탐라 음식문화를 중심으로
저자 : 이종수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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