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kcha

일본의 막부, 고려문과 고려견 본문

분류없음

일본의 막부, 고려문과 고려견

nokchawooyu 2018. 11. 13. 14:57
일본 역사에서, 신라계의 원씨(源氏)와 백제계의 평씨(平氏)를 빼놓을 수 없다. 

옛날에 원씨(源氏)는 흰 깃발을, 평씨(平氏)는 붉은 깃발을 사용했으며, 

현대 일본의 "홍백전"(紅白戰)이 그것에서 유래되었다.
 
명분상(名分上),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는 평씨(平氏)를 내세웠고,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 家康)는 원씨(源氏)를 내세웠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를 "평수길(平秀吉)"이라고 쓰기도 한다.

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 家康)를 "원가강(源家康)"이라고도 부른다.
 
카마쿠라(鎌倉) 막부(幕府)와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는 신라계 원씨(源氏)를 명분(名分)으로 내세웠다. 

결국, 에도(江戶) 막부(幕府)를 여기에 추가할 수 있다. 
 
 

일본의 역사상, 세 가지의 공식적인 막부(幕府)는 모두 원씨(源氏)를 내세운 무사(武士) 정권이다.
 
신라계의 원씨계(源氏系)냐 백제계의 평씨계(平氏系)냐의 문제는 순수한 혈통(血統)을 뜻하는 것보다,
 
이른바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내세우는 수단이었다.
 


源 義光(みなもと の よしみつ)は、平安時代後期の武将。河内源氏の二代目棟梁である源頼義の三男。
 
兄に八幡太郎義家や加茂二郎義綱がいる。
 
近江国の新羅明神(大津三井寺)で元服したことから新羅三郎(しんらさぶろう)と称した。

 
[출처=위키백과(일본어)]
 
 
 
고려견은 신수(神獸)로써 왜왕과 신을 지키는 개로 한국의 삽살개를 묘사했다.
 
일본의 신사에 들어서면 코마이누(狛犬)라 불리는 석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코마이누는 고려개(高麗犬)를 의미한다.
 
그런데 일본 신사의 고려개 석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열도를 장악한 이후에
 
설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왜 열도에 고려개를 세웠을까? 왜 석상의 이름에 고려가 들어갈까?
 
더욱이 그가 거쳐했던 에도성(江戶城)의 성문 10채가 모두 고려문(高麗門)이었다. 

도쿠가와를 포함한 막부 가문들은 모두 다 고려계에 속한다.
 
그리고 막부와 대립하였던 임진왜란-메이지유신-한국병합-현 일본지배 세력은 백제계에 속한다.
 
백제계의 대표가문은 사쓰마번(薩摩藩)을 통치하였던 시마즈(島津) 가문인데
 
이 가문이 통치하였던 사쓰마, 즉 현 가고시마(鹿児島)에는 지금도 신사에 고려개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총리의 본향이 바로 가고시마이다.
 
그리고 메이지 정부가 손을 댄 신궁에서도 우리는 좀처럼 고려개를 볼 수 없다.
 


메이지 정부는 에도성의 고려문 2채를 철거하면서 에도(江戶)라는 마을(町)을
 
동경(東京)이라는 도시(都市)로 개조하였다. 

근대공간인 도시는 고려문 철거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