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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이름은 한국 사람들이 먼저 쓰던 것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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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도고 (吉田東伍, 1864-1918) (와세다 대학 교수)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 (1907)
'일본(日本)'이라는 이름은 한국(三韓)사람들이 먼저 쓰던 것인데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이름을 일본으로 정했다.
이 책에 서명한 사람 중에는 당시 일본총리로 철저한 제국주의자였던 가츠라다로(桂太郞)
그리고 교육부장관 마키노 노부아키(牧野 伸顯) , 대표적 황국사상가(皇國思想家)인 고대사학자 호시노히사시(星野恒)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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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요시노리 (히로시마 대학 교수)
일본 황실이 수여하는 문화훈장 수훈
일본 가타카나는 신라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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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벤틀리 (John R. Bentley) (런던 대학교 교수)
일본 히라가나는 백제에서 유래하였다.
397년 일본에 한자를 전해준 백제의 왕인(王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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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러드 다이아몬드 (Jared Diamond)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
일본인의 조상은 한국인(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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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터 코벨 (John Carter Covell) (컬럼비아 대학교 박사)
"일본 역사가들은 369년 가야의 왜국 정벌 이래 720년까지 한국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왜국을 전적으로 지배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감춰버렸다"
"왜국 초기 역사부터 8세기에 이르도록 문화에 있어서 한국이 떠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자란 어린아이였다"
“한국은 부모, 일본은 부모 버린 불효자식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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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倭
그 나라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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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칠지도 앞면〉
태△ 4년 5월 16일은 병오인데, 이 날 한낮에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만하다. △△△△가 만들었다.
〈칠지도 뒷면〉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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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시대
신라로 파견된 견신라사 25회
당나라로 파견된 견당사 10회
일본국이 사신을 보내와 황금 300량(금 4.5kg)을 바쳤다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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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막부
◈ "고려의 왕건(王建)이 신라와 백제를 격파하니, 왜(倭)ㆍ탐부(耽浮)ㆍ환어라(驩於羅)ㆍ철륵(鐵勒) 등 동이(東夷)의 여러 나라(諸國)가 모두 두려워하여 고려의 속-국이 되었다." 《남당서 권18, 고려》
왜(倭) = 일본
탐부(耽浮) = 제주
환어라(驩於羅) = 콩그라트 = 칭기스 칸 부인이 여기 출신
철륵(鐵勒) = 철륵(鐵勒)은 한(漢)나라 때 흉노(匈奴)의 후예로 중국 북방 민족의 하나이다. 돌궐은 철륵(鐵勒)에서 나왔다. 튀르키예(터키)의 뿌리인 돌궐(突厥)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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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6년 문종 10년 10월 日本國에서 사신을 보내왔다
문종 27년 7월 日本國人 왕칙등 42인 나전 외에 12가지 물건을 진상
문종 27년 7월 일기도(규슈 나가사끼)구당관 등정안국 등 33인 방물을 진상
문종 27년 11월 日本國 에서 예물과 명마를 헌상
문종 28년 2월 日本國 선두 중리 등 39인 특산물을 진상
문종 29년 4월 日本國 오옹에 등 18인 특산물을 진상
문종 29년 6월 日本人 조원. 시경등 12인 특산물을 진상
문종 29년 7월 日本國 상인 59인 고려에 도착
문종 30년 10월 日本國 승속(승려와속인) 25인 불상을 헌상
문종 33년 11월 日本國 신통 등 소라.해조 등을 흥왕사에 진상
문종 34년 9월 日本國 축전주에서, 방물을 헌상, 살마주(가고시마)에 사신을 보내와 헌상
문종 36년 11월 대마도에서, 방물을 헌상
1084년 선종 원년 6월 日本國 축전도의 후지와라,,수은을 헌상
선종 2년 2월 대마도주 구당관, 감귤을 진상
선종 3년 3월 대마도주 구당관, 방물을 진상
선종 4년 3월 日本 상인 중원.친종 등 32인 특산물 진상
선종 4년 7월 대마도의 원평 등 48인 수은.진주.보도.우마 등을 헌상
선종 6년 8월 다자이후의 상인, 수은.진주.궁전.도검 등을 진상
예종 11년 2월 日本國에서 감자(감귤)를 진상
고려사(高麗史)
일본에서 내왕하는 선박을 일본인들이 '진봉선(공물을 바치는 배)'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공물을 바친다는 뜻으로 진봉이란 용어 사용은 이미 오래되었으며 일본인이 물품을 진봉하는 항례적인 법규가 제정되었다.
때로는 고려에서 주는 하사품을 노리고 일본인들이 고려에 진봉하기 위하여 상호간에 경쟁이 심하여 서로 싸우는 폐단까지 생기자, 고려에서는 진봉 그 자체에 대하여 좋아하지 않은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일정 기간 내에 일본 상선의 출입선수 횟수에 대하여까지 제한을 두게 만들었다.
조선시대 이때는 개좆본의 조공 기록이 너무많아서 무려 일본측 공식 외교문서를 가져왔다
대마도는 쌀 없어서 조선에 쌀달라 구걸한 약소-국이다. 당연히 일본의 여러 작은나라가 조선에 조공 보낼 물품을 대마도에 맡겨놓고 대마도주가 조선에 보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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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카가 막부
세종 32년 2월 16일
일본국 사신이 쇼군의 글을 가지고 와서 조공을 바치다
"일본국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 (足利義政)는 절하고 조선 국왕 전하께 회답을 올리나이다.
귀국(貴國)이 이웃나라와 수호(修好)하신 이래로 화석(華席)과 양약(良藥) 등이 귀국으로부터 아니 오는 때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불교가 동점(東漸)한 것은 귀국의 공덕이 아니라면 백마(白馬)의 발굽일지라도 우리 땅에 미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장경(大藏經)》 1부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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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
일본 쇼군 덕천가광은 조선 국왕 전하께 엎드려 절합니다.
12월이 되어 추위가 사람을 핍박하는 이때에 조선통신사들이 온화하게 찾아주시니,
마치 봄바람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강역을 다스리고 있으면서 갑자기 귀국의 소식을 접하고 보니,
계속해서 교린을 돈독히 하는 아름다운 뜻에 감복하며, 더욱 기쁘고 위로가 됩니다.
두 나라에 만대토록 경사가 흘러가도록 하고 감히 사이가 벌어지게 하지 않을 것을 확약합니다.
삼가 계절에 따라 나라를 위해 옥체를 보중하시기 바라며, 이만 편지를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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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最古) 목활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751) 신라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1377) 고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3년 후양성 천황(後陽成天皇)에게 조선의 동활자를 바친다.
조선의 금속활자를 헌상 받은 후양성 천황은 1597년 권학문(勸學文)을 출간한다.
日 최대 제면기업체 '사누키면기' 대표
오카하라 유지 회장
"우동 원조는 칼국수"
모토야마 테키슈
<음식사전> (1958)
밀가루를 넣어 찰기를 더한 소바,
즉 오늘과 같은 형태의 28 소바는
조선에서 건너 온 원진(元珍)이라는 법명의 승려가 도다이지에 전해줘 탄생했다.
아라이 하쿠세키 (1657~1725)
동아 (東雅 1719)
"고려의 말장(末醬)이 일본에 들어와서 그 나라 북방방언 그대로 '미소'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 (徳川吉宗, 1684~1751)
일본 막부는 조선에서 구해 온 인삼 씨앗과 뿌리를 곳곳에 심어 재배를 시도했다.
몇 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 1733년에 이르면 일본에서 조선 인삼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고
1738년에는 시장에 ‘조선 인삼 종자’ 판매가 시작된다.
일본측 기록
1709년 《대화본초》 "우리에게는 고추가 없는데, 히데요시가 조선 원정 때 그 나라에서 종자를 가져왔기에 고려 호초(胡椒)라 한다
1723년 《대주편년략》 "고추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가져 왔다"
다카하시 요시오
‘일본인종 개량론(日本人種改良論)’(1884)
“서양인은 신장,체중,두뇌 어느 면에서든지 일본인보다 뛰어나다”
"열등인종이 우등인종과 잡혼하면 열등인종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입장에서,
국가와 개인을 위해 능력유전을 목적으로 잡혼해야 한다"
인효천황(120대 천황) 때, 일본에 표류한 조선남자가 겪은 일.
'왜녀倭女가 조선남자와 정을 통하여 아이를 낳으면 일본에서 지극히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왜녀들이 반드시 사사로이 정(ㅅㅅ)을 하고자 한다.
나카소네 총리 또한 먼 조상이 한반도에서 이민 온 집안이다.
다케오 후쿠다 전 일본총리는 대중 앞에서 그의 조상이 1500여 년 전 한반도에서 규슈로 이주해온 도래인(渡來人) 혈통임을 공표했다.
일본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가 사망 1년 전인
1974년 규슈(九州) 미야마(美山)에 있는
끌려온 도공 심당길의 14대후손을 찾았을 때
한국과의 ‘인연’이 드러났다.
“당신네는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됐습니까.” (사토 전 총리)
“400년 가까이 됐습니다.” (14대 후손)
“우리는 그 후(임진왜란 이후)에 건너왔습니다.”(사토 전 총리)
사토 전 총리는 앞서 1957∼1960년에 일본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친동생이다.
두 형제의 성이 다른 것은 기시 전 총리가 양자로 가면서 ‘사토’에서 ‘기시’로 바뀌었기 때문.
아베 총리는 기시 전 총리의 외손자다.
즉... 사토 총리 , 기시 총리 , 아베 총리
셋 다 조선계 총리라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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