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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가 가장 앞선 지역이었던 이유 본문
요하문명 관련 담론과 관련해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첫째, 요하문명의 주역들은 정말로 중국인의 조상이라기보다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조상이었을까? 둘째, 그렇다면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문명이 앞선 곳이었을까? 그리고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고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세 번째 질문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이 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을까?
일단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부터 생각해보자. 굳이 중국이 막고 있는 ‘동북공정’ 대상 지역이 아니더라도 이미 충분한 고고학적 증거가 나왔다. 대표적인 키워드는 ‘빗살무늬 토기’다. 빗살무늬 토기는 유라시아 대륙 북부에서 출토되는 신석기 시대 토기로, 진흙을 빚어 빗살 모양의 기하학적 무늬를 새겨 넣은 것이 특징이다. 세계적으로 고고학적 연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 세기, 우리는 이 토기가 시베리아 지역에서 먼저 만들어져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것으로 배웠다.
빗살무늬 토기의 전파 경로. 홍익희 ‘한반도에서 퍼져나간 빗살무늬 토기’(2015) 게재 지도를 기초로 재구성. © 사진=이진아 제공
하지만 최근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으로 간단하고 정확하게 유물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되면서 가장 오래된 빗살무늬 토기의 역사가 바뀌었다. 사실상 가장 오래된 토기는 제주도를 비롯한 한국의 남서해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며, 다음으로 일본 규슈 지방과 요하 지방 순인 것으로 밝혀졌다. 빗살무늬 토기는 바이칼 호 서쪽 시베리아 지역에서 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도 발견되는데, 모두 한반도에서 나오는 것보다 많게는 7000년 이상 지난 다음인 기원전 4000년 이후의 것들이다.
빗살무늬 토기와는 다른 유럽형 신석기 토기인 반트세라믹은 기원전 5500년 무렵부터 나타난다. 중국 본토에서는 즐문토기(빗살무늬토기)가 나타나지 않으며, 가장 오랜 토기로는 황허 중류 유역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양샤오 문화의 채색도기가 기원전 5000년 정도에 해당된다. 물론 요하지역에서는 즐문토기가 많이 나온다.
신석기 시대 기술혁명 중 하나로 꼽히는 토기제작은 세계적으로 한반도 남부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그것도 다른 지역에 비교해서 최소한 5천 년 이상 앞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하문명은 한반도의 다른 문명과 연속선상에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솔직히 우리는 우리 조상이 그렇게 대단한 집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정말 그랬을까…?’ 가깝게는 서구문화를 모든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현대사회의 분위기, 그보다 앞서서는 일제강점기에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진 식민사관, 그보다 먼저, 그리고 훨씬 오랜 기간 중국이 해온 한민족 역사 축소 및 왜곡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역사에서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을 풀어주는 마법의 열쇠, 기후변화와 생태학적 조건들을 통합해서 다시 보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난 후 찾아온 온난기 초기에는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발해만까지가 지구상에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지역이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왼쪽)1만2000년 동아시아 지형. © 사진=출처: Proudman Ocenanographic Laboratories (오른쪽)동아시아 지형 및 한반도 인근 해류 지도. © 사진=출처: 해양조사원, 재구성: 이진아
지금으로부터 1만2000년 전, 빙하기가 끝나가던 시점에서 이미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연결하고 있던 땅은 수면 위에 잠기고 서해안의 너른 갯벌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 갯벌은 온난화 및 서해안의 침강 경향으로 인해 그때보다 갯벌의 폭이 훨씬 좁아진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뛰어난 조건을 갖춘 생태계다.
농업이 주된 생산방식이 되기 이전의 수렵채취 사회에서는 생산성 높은 갯벌의 존재가 인간 정주지 조건의 제1순위였다. 조개를 쉽게 캘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식단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간주돼 왔던 동물성 단백질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렵채취 시대의 인간집단은 우선적으로 그런 곳에서 정주하려 했고, 거기 오래 살면서 먹고 남은 조개껍질을 버려 ‘패총’을 형성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패총의 규모가 크고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은 우리나라 서해안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서해안은 인간 정주에 가장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는 방증이 될 수 있다.
빙하기 다음에 온 온난기 동안 점점 더 넓어져 온 서해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중국 동해안이, 동쪽에는 한반도 서해안이 나란히 펼쳐져 북쪽 발해만에서 만난다. 1만2천 년 전의 동아시아를 보여주는 위 왼쪽 그림으로 보자면 중국 쪽이 훨씬 더 넓은 갯벌을 형성했을 것 같고, 따라서 훨씬 더 많은 인간들이 일찍부터 모여 살았을 것 같다. 하지만 왼쪽의 지형 및 해류 지도와 함께 보면 사실은 정반대의 상황, 즉 중국 쪽보다 한반도 쪽이 훨씬 더 사람이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일단 바닷물의 온도 차이에서 온다. 한반도 서해안 쪽으로는 난류, 즉 따뜻한 바닷물이 흐른다. 필리핀 동남해역에서 일본열도 쪽으로 흐르는 거대 난류 쿠로시오에서 갈라져나온 황해난류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데, 한반도 서안에서는 역시 난류인 서한연안류가 되어 흐른다. 같은 바다인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 동안 쪽에는 발해만에서 남쪽 방향으로 한류인 연안류가 흐른다. 따라서 똑 같이 서해안을 끼고 있어도 한반도 서해안에는 난류의 영향으로 해양생물과 미생물이 풍부하게 사는 갯벌이 형성되며, 중국 동해안은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난류와 함께 지리 및 지형적 조건으로 인한 기후의 차이도 있다. 같은 위도이면서도 중국 동해안 쪽보다 한국 서해안 쪽이 온난하며, 서쪽으로 바다가 있기 때문에 습기가 충분히 공급된다. 이에 비해 중국은 서쪽으로는 차고 건조한 육지가, 동쪽으로는 찬 해류가 흐르는 바다가 있어서, 한반도 쪽에 비해 한랭건조한 기후를 형성하게 된다.
다음으로는 산지생태계와 해양생태계의 균형 문제다. 오른쪽 지형도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은 해안에서 아주 먼 곳에 대규모 산지가 있고, 거기서부터 바다까지는 거의 평야다. 지도상으로 볼 때는 평야가 많아 좋을 것 같지만, 가까이 산지가 없는 이런 평야는 비옥도가 떨어진다. 이에 비해 한반도는 동쪽 바닷가에 연해서 높은 산지가 형성되어 있어, 거기서 오는 영양물질이 서쪽에서 평야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서쪽 평야지대까지 풍부한 영양물질이 공급된다. 이것은 하류 평야지대의 생산성과 함께 갯벌 생태계의 생산성도 높여준다.
이런 생태학적 조건은 앞서 세계사 편에서 봤던 메소포타미아나 유럽의 이베리아나 이탈리아 반도 등에도 해당되지만, 한반도의 경우엔 여기서 플러스알파의 차이가 더해진다. 유럽이나 메소포타미아와는 달리 한반도에는 토양침식이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큰 바다가 가까이 있으면 공기는 맑을지 몰라도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쉽게 토양이 침식된다. 한 번 쓸려 내려간 표토층이 다시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라시아 대륙 거대한 땅덩이의 동쪽 끝에 자리한 한반도에는 중국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산지에서 불어오는 흙먼지가 늘 공급되기 때문에 표토층 소실 염려 없이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농업이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큰 변화 없이 농사를 지속해서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흙먼지는 토기 제작이 가장 먼저 발달하게 된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유라시아 대륙 쪽에서 불어오는 흙먼지 중 무거운 입자는 중국 동해안 및 서해에 떨어지고 고운 입자만 한반도에 도착하여, 토기의 원료인 좋은 점토를 충분히 형성해주었을 것이다.
즐문토기 제작과정 재현. © 사진=양양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제공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해볼 때 토기 제작 면에서 한반도가 세계에서 단연 앞선 역사를 자랑한다 해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토기만 발달한 게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비옥한 땅은 항상 가장 강한 자가 사는 땅이었다. 잘 먹어서 체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장 강한 자로 만들어주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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