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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꽃놀이 전통 본문
한국의 전통 꽃놀이 문화
신라 의 기록
삼월 삼짇날(현재의 양력2013년 4월12일) 교외나 산 같은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음식을 먹고 꽃을 보며 노는 꽃놀이.
화류(花柳) 또는 회취(會聚)라고도 한다
고을의 서쪽 17리에 화절현 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것은 언전으로 신라의 궁인들이 꽃을 꺾어 봄놀이를 하였다
그로 인해 이러한 지명이 생겼다,
(신라 교남지(嶠南誌)』 권4, 경주 산천조)
삼국유사 김유신조 와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속악(俗樂) 양주편(楊州篇)에는,
매년 봄에 남녀가 시냇가에 모여 꽃놀이와 잔치를 베풀고 노래를 불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9대 소절의 하나였다 삼짇날은 음력 3월3일 (현재의 양력2013년4월12일)
삼짇날은 삼월 삼짇날이라고도 하는데, 다른말로는 답청절 이라고도 하는데,
이날은 들판에 나가 꽃놀이를 하고 새 풀을 밞으며 봄을 즐기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고구려에는 낙랑원에서 수렵을 하였고, 신라는 불계를 행했으며,
고려 때는 답청을 , 조선시대에는 조정에서 기로회를 교외에서 갖기도 하였다고 한다.
삼짇날은 꽃구경을 하고 각종 민속놀이를 하고 여러음식을 만들어 먹는 날이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봄철의 꽃놀이에 관한 글을 볼수 있다
저 왕손과 공자들이 호탕한 벗들과 꽃 구경하며 뒷수레에 기생을 태웠는데
새파란 저고리에 붉은치마 차림이다
멈추는 곳마다 자리를 펴고 옥으로 만든 피리와 생황을 불면서
비단 같은 온갖 꽃을 바라보고 한껏 취한 모습으로 어정거린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도 꽃놀이가 있다 양반 부녀자들에게 가장 기품 있고 풍류적인 놀이였고.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남쪽으로 올수록 화전놀이가 세시풍속으로 성행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
“오늘은 순시를 떠나 여수시 화양의 감목관 있는 곳에 이르니
승평부사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온 뒤라 산천에는 꽃이 활짝 피어
좋은 경치를 이루고 있어 기생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자연을 즐기다가 저물어서야 떠나갔다”
1593년 3월 3일 일기에도 “아침에 비가 왔다. 오늘은 답청절(삼짇날)인데 흉악한 적들이
물러가지 않으므로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에 떠 있다”라고 하는
답청절의 아쉬움을 술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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