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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조선통신사 연희 일본에 큰 영향, 일본 민속 조선에 확대되지 못해'

nokchawooyu 2018. 10. 16. 15:08

한·일 교류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확실히 달라졌다. 영화와 드라마, 게임 등 문화 개방에 따른 영향이 가장 컸지만 인적·학술 교류도 급속도로 늘었다. 하지만 독도 등 정치 문제와 관련되면 양국 관계는 하루아침에 급랭하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두 차례 격전(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치른 직후의 조선과 일본, 그 400년 전에 평화를 갈구하면서 이뤄진 조선통신사를 통해 두 나라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하려 했을까.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한국민족문화연구소(소장 김동철)와 부경역사연구소(소장 이수훈) 공동주최로 지난달 27일 부산대에서 열린 '통신사와 한·일 문화교류' 학술토론회에서 찾아봤다.

△노래와 춤에 대한 시선 차이=부산대 한태문(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통신사 왕래를 통한 한·일 연희 교류'란 논문에서 "조선통신사의 연희는 일본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 반면 일본의 연희 활동은 사행록 기록에 그친 측면이 있다"면서 "이처럼 양국이 주고받은 영향의 차이는 통신사 연희가 일본에서만 이뤄진 데다 사행원을 비롯한 조선 지식인들의 사고 밑바닥에 대일본 문화우월 의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 조선통신사는 악공과 소동, 마상재 등의 연희를 베풀었다"며 "이 같은 연희가 일본 회화나 민속, 문학 등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은 고래잡이 놀이와 원숭이 놀이 등 다양한 민속연희를 선보였지만 그 영향이 사행록에만 기재됐을 뿐 조선사회까지 확대되지 못했다고 풀이했다.

△음식에 대한 시선 차이=대전보건대 김상보(전통조리과) 교수는 '조선시대 한·일의 사신접대 음식문화 고(考)'에서 "음식 문화의 교류는 양국의 사신 접대를 통해 주로 이뤄졌다"면서 "특히 반상에 꽃을 꽂아 입맛을 돋우는 '상화(床花)'는 일본에 전래된 대표적인 문화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 다례와 결합된 연회 상화가 고려시대 문헌에서도 발견되지만 일본은 아즈찌모모야마(1574∼1602) 시대에 이르러 본선요리와 다도가 결합하면서 간반(看盤)요리가 되고, 그때 비로소 상화가 간반에 꽂힌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옷에 대한 시선 차이=동명대 이주영(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18세기 조선통신사 복식 고찰'에서 "조선통신사의 조복과 관련해 1711년 일본 관백이 화사를 보내어 양관과 조복을 그려 갔다는 기록과, 1748년 전명례 때 입은 금관조복이 매우 기이하고 화려했으며 관백 궁의 여러 사람들도 흠탄했다는 기록, 그리고 1763년 일본사람들이 조복을 보고 신선처럼 바라보았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조복의 독특한 디자인과 아름다움이 일본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현충 기자 ch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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