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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kcha
세종이후 한반도 경지 면적과 강단사학의 무능함. 본문
위에 도표는 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뒤, 토지 조사를 통해 기록한 한반도의 경지 면적입니다.
특이 사항은 1910년에 210만 헥타르에 머물던 경지면적이 1919년 조사에서 415만 헥타르로 두배 가까이 증가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일제에 의해 경지면적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조사 대상에서 누락됐던것이 장부에 기입된것을 의미합니다.
또하나 특이점은, 일제가 1920년 부터 산미증산계획을 내세우며 경작지 증가를 독려했음에도, 이후 미미한 증가만 보였다는 겁니다.
이것은 이미 한반도 경지면적 증가가 포화상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한반도 전체 면적은 세종시절 김종서가 6진을 개척한 뒤 큰 변화가 없습니다.
조선 왕조가 농업을 중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미 세종 말기에는 경작할 토지는 대부분 경작지로 만들엇다는 것이 타당한 추론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세종 이후 조선 시대 한반도 경작지 면적은 대략 400만 헥타르 전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런 추론을 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은, 조선시대 경작지 측정이 면적이 아니라, 소출을 기반으로 한 '결'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점에서 한국 강단사학의 무능이 드러납니다.
중요한 자료애 대해서 정리하는 연구를 하지 못하고, 일본이 그들 입맛에 맞게 만들어놓은 자료에 맹신하고 있는 것이 강단사학의 자화상 입니다.
년도 | 일본(백만헥타아르) |
930 | 85.5 |
1,450 | 93.8 |
1,592 | 159.0 |
1,600 | 162.1 |
1,720 | 284.6 |
1,874 | 302.5 |
고려전기부터 조선왕조 세종때까지
일본의 경지면적은 큰 변화없이 100만 헥타아르 미만이었습니다.
조선의 경우, 1432년(세종 14년)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에,
생산환산 면적 170만결을 기록합니다.
세종시대를 기준으로 일본은 조선의 1/4도 안되는 경지면적을 가진 겁니다.
그후 임진왜란 때가지 일본의 경지면적이 159만 헥타아르로 확대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 경지면적의 1/2도 안된 수준입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경지면적을 확충한것은,
임진왜란 이후, 150만 헥타아르에 달하는 간토평야를 개발하여, 300만 헥타아르 수준으로
경지 면적을 늘린 때입니다.
그전 까지 간토평야는 늪과 뻘로 이뤄진 불모지였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를 개발하면서,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로 조선에 근접하게 됩니다.
경지면적이 중요한 것은,
기복이 심한 생산량 보다, 안정적으로 농업생산력을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농업 생산량으로 보면, 일본이 조선을 따라잡은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 개발과 화학비료 대량도입이후입니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2모작을 해서 수확량이 높다고 하는데,
소가 없어 심경을 못하고. 비료를 제대로 주지 못하는 이모작은
토지의 사막화만 가속화 할 뿐입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8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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