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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kcha
------------------------------------------------------------------------ 요시다 도고 (吉田東伍, 1864-1918) (와세다 대학 교수)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 (1907) '일본(日本)'이라는 이름은 한국(三韓)사람들이 먼저 쓰던 것인데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이름을 일본으로 정했다. 이 책에 서명한 사람 중에는 당시 일본총리로 철저한 제국주의자였던 가츠라다로(桂太郞) 그리고 교육부장관 마키노 노부아키(牧野 伸顯) , 대표적 황국사상가(皇國思想家)인 고대사학자 호시노히사시(星野恒)등이 있다. ------------------------------------------------------------------------ 고..
미국 신문 "뉴욕 타임스" “미국이 초밥 먹게 된 건 한국인 덕” 문 전 총재는 1980년 당시 뉴욕시 맨해튼 중심부에 소유한 뉴요커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수산업 종사자들을 불러모아놓고 일명 '참치의 길'이란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세계의 굶주림과 식량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세계가 초밥을 사랑하게 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초밥 = 동남아 음식이며, 한국인이 퍼뜨렸다. 그게 현실이야. 초밥 (동남아) ㅡ> 스시 (일본) 칼국수 (한국) ㅡ> 우동 (일본) 어환 (중국) ㅡ> 츠케아게 (일본) 텡푸라 (포르투갈) ㅡ> 덴푸라 (일본) 몰디브피쉬 (몰디브) ㅡ> 가쓰오부시 (일본) 갈비 (한국) ㅡ> 카루비 (일본) 비엔땅 (중국) ㅡ> 벤또 (일본) 코톨레타 (이탈리아) ㅡ> 돈카츠 (일본) 커리..
'한국이 카피했다'는 이야기를 넷우익들은 좋아한다. 일본 기업들도 해외 인기 브랜드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을 많이 내놓고 있는데도 말이다. 넷우익들은 그냥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한국이 카피했어!" ネトウヨ「韓国はパクリ国家」 : ネトウヨの寝耳にウォーター (blog.jp)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동천왕조의 기록에도 국(羹)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그만큼 우리 민족의 국을 먹어 온지는 오래된 것이다. 고려시대의 국은 갱(羹), 탕(湯), 학(矐, 곰국)과 구이(炙), 회(膾), 포(脯), 볶음(炒) 등이다 고려 후기 몽골조리법인 만두나 설렁탕 등이 유입된다 고려 말 몽고의 풍습이 들어 오면서 고기를 삶아 국물을 내는 곰탕류의 음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려시대 곡물은 쌀과 잡곡이 중심이었으며, 수저는 타원형으로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통일신라 후기의 제도와 풍속을 계승한 고려시대는 불교를 더욱 발전시켜 국교로 삼았다. 살생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육류나 생선류 이용 대신 채식을 주로 하는 식생활이 발달되었다. 어업이나 양축이 금지되어 양곡증산의 필요성이 증가되었기 때문에 권농정책으로..
일본의 10대 부자 중 7명이 재일 40대 부자중 21명이 재일.. 별표가 재일입니다. Japan 's 40 Richest 1Tadashi Yanai & family 타다시 야나이 패스트 리테일 링 사장 의류 63 세 ★ 2Nobutada Saji & family 사지信忠산토리 사장 음료 66 세 3Masayoshi Son 손정의 소프트 뱅크 창업자 IT54 세 ★ [귀화인] 4Hiroshi Mikitani 미키 타니 히로시 라쿠텐 사장 IT47 세 ★ 5Kunio Busujima & family 독도 쿠니오 SANKYO 창업자 파칭코 86 세 ★ 6Takemitsu Takizaki滝崎武光키엔스 창업자 전기 기기 66 세 ★ 7Yoshikazu Tanaka 다나카 요시카즈 그리 창업자 IT35 세 8Ak..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 속담이 가장 잘 어울리는 데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간의 관계다. 좋든 싫든 우리와 일본은 뗄 수 없는 역사적 관계가 있음에도 우리는 일본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 도대체 알려 하지를 않는다. 일본은 한반도 식민지 경영을 위해 우리의 풍수와 정감록이라는 민간예언서까지 연구한데 비해 우리는 어떤 일본 연구를 해 왔는지 돌아볼 때다. 일본 안에는 지금도 한반도 관찰자(코아 워처, Korea watcher)를 자처하는 사람, 이 타이틀을 직업으로 삼은 프로 저널리스트들이 기백 명이 넘는다. 그에 비해 우리는 정말 일본문제만을 프로로 전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는지 의문이다. 이런 지적 비중이 심한 불균형 속에서 부지영 전 동경특파원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을 내어 이처럼 깊은 일본 연..